과학자들이 인간세포를 이용하여 100% 유기체로 된 로봇을 개발했다. 

마치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이 생체로봇은 인체 내에 약물을 전달하거나 손상 조직을 치료하는 의료용 나노봇 시대를 현실화할 치트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터프츠대학과 하버드대학, 뉴저지대학 공동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게재한 연구논문을 통해 성인의 기관 상피세포를 활용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학적 로봇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앤트로봇(Anthrobots)’으로 명명된 이 바이오봇은 2주간의 배양을 통해 개별 기관 세포가 뭉쳐진 다세포 구체(球體)다. 크기는 작은 것이 약 30미크론(㎛), 큰 것은 약 500미크론이며 모양은 원형 또는 타원형을 띄고 있다. 이들은 표면에 난 섬모를 이용해 실험용 접시 위에서 움직이는데 섬모의 양과 위치에 따라 직선 이동, 곡선 이동, 제자리 돌기, 꿈틀거리기 등 이동 패턴이 다양했다. 이동 속도 역시 구체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초당 5~50㎛로 차이가 있었다.

특징적인 사실은 세포 자체는 물론 다세포 구체로 뭉쳐지는 과정에도 유전자 조작(DNA 변형) 같은 인위적 변이가 가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터프츠대학 기젬 구무스카야 박사과정생은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것만으로 각 세포가 알아서 뭉쳐서 여러 크기와 모양의 다세포 구조를 형성했다"며 "실험실 조건에서 생존기간은 약 45~60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구무스카야의 지도교수이자 논문의 공동저자인 마이클 레빈 교수가 버몬트대학에 재직 중이던 2020년 동료인 조슈아 본가드 교수와 함께 이룬 초기 연구를 토대로 한다.

당시 두 교수는 핀셋과 메스로 개구리 배아의 피부세포 3000여개를 뭉쳐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최초의 바이오봇 ‘제노봇’을 개발했다. 1년여의 추가 연구결과, 제노봇은 이동 능력에 더해 자가 치유와 자가 복제 능력까지 발휘했다. 뭉쳐지는 세포의 모양과 크기, 섬모의 수와 위치를 제어해 생물학적 기계(로봇)처럼 활용할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두 교수는 제노봇이 순수 생체물질인 만큼 암세포 등 인체의 특정 부위에 약물을 전달하거나 막힌 혈관을 뚫는 등 나노봇으로써 최적의 효용성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가지 문제는 양서류 세포에 대한 인간 면역체계의 거부반응이었는데 이번 연구성과로 그것이 해결됐다. 레빈 교수는 "앤트로봇은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들 수 있어 온갖 부작용을 가진 면역 억제제를 투입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해진다"며 "수주~수개월 후 삶을 다한 앤트로봇은 그대로 흡수되기 때문에 기계 형태의 나노봇처럼 체내 축적 위험과 체외 배출 시의 환경 오염 우려가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구팀은 인체 조직 내에서 앤트로봇의 반응을 연구하던 중 예상치 못한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손상된 뉴런(신경세포)에 앤트로봇을 넣었더니 손상 부위의 치유가 촉진된 것이다. 이는 별도의 추가 조치 없이 앤트로봇 자체를 신경 질환 및 신경·척수 손상 치료에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앤트로봇의 정확한 뉴런 치유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한편, 또 다른 능력을 찾아낼 계획이다.

현재 생명공학계는 앤트로봇의 개발을 둘러싸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세포로 만든 앤트로봇을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윤리성과 안전성 논란으로부터 벗어나 인체 내에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함을 시사하기 까닭이다. 여기에는 표적 약물 전달, 혈전 및 혈관 내 콜레스테롤 제거, 손상된 신경 복구, 암세포 및 박테리아 탐지 등이 포함된다.

카네기멜론대학 시 렌 교수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연구는 놀랍고도 획기적"이라며 "엔트로봇은 진정한 개인 맞춤형 의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